MMCA 채널, 국립현대미술관

2018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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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이번 <이정진 : 에코 – 바람으로부터> 전에 대한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거의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한국 관람객들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정진이 남자 작가인가?’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렇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이정진 : 에코 – 바람으로부터> 전은 아주 오랜만에 고국에서 여는 전시입니다. 제 작업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도 되지만, 그마저도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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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작품을 보면 마치 회화작품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시 같기도 합니다. 공예 전공이었던 작가님은 어떤 이유로 사진에 매료되신 건가요?

대학교 1학년 때 카메라를 처음 접했고 동아리에서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몰입했기 때문에 독학으로 익히며 사진 전공자처럼 지냈죠. 제가 사진 작업을 하는 이유는 뭐랄까, 내면의 표현 욕구가 공예나 회화보다는 사진으로 작업했을 때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장 근접하게 나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물이나 풍경과 교감하며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직감적으로 이루어져 저와 잘 맞았던 것이죠.

 

 

Q.1990년대 <미국의 사막>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한지에 인화하는 방법을 고안하셨는데요. 그 작업을 ‘수행’에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작업을 ‘사진’이라는 고정 장르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작업 방식과 인화 매체에 대해 다양하게 실험했습니다. 사진 프레임의 ‘칼 같은 단면’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였죠. 직접 감광 유제를 바르며 여러 실험을 했었고 종이, 천, 신문지, 휴지 등 여러 재료로 시도를 했습니다. 그중 한지는 작업방식이 매우 까다롭고 컨트롤하기 어렵지만, 자연이나 사막 같은 소재와 한지 프린트가 굉장히 잘 맞았습니다. 이렇게 수공적인 아날로그 프린트 기법을 통해 매체와 이미지를 실험하고 물성과 질감을 탐구했죠. 이후 작품 스케일이 점점 더 커지면서 결과물을 예측하기 어렵고 컨트롤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20년간 작업을 한 것 자체가 수행이라는 거죠. 하루 종일 작업하고 실패한 결과물을 버린 뒤 다음 날 또 다시 하고…. 마음을 비우지 않는다면 기약 없는 이 행위를 반복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수행과도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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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미국의 사막 Ⅱ94-0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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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미국의 사막 Ⅱ94-04>(1994)

 

Q.2003년의 <사물> 시리즈를 제작하실 때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사물>은 다른 작업과 제작 과정이 달랐습니다. 보통 풍경 사진을 찍을 땐 제가 그 순간을 기다린 게 아니라 그 순간을 만났을 때 제가 굉장히 직감적으로, 셔터를 빠르게 누르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사물>은 그 겉모습이나 의미 등이 한 꺼풀 벗겨지기를 기다렸다고 할까요? 어느 날 오후 작업실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했는데, 한참 후 눈을 떴을 때 책꽂이 사이로 조그마한 항아리가 보이더라고요. 그 자리에 5년 넘게 있었을 텐데, 평소엔 있는지도 몰랐던 그 물건이 다시 보이고, 신기하게도 다른 형태로 말을 걸어왔죠. 그 느낌을 기억하면서 대상의 그림자를 지우고 화면 속 공간 안에 띄우는 작업을 했던 게 <사물>입니다. 대상이 된 물건들은 빌려오거나 길에서 주운 것도 있어요. 바로 촬영하지 않고, 찍고 싶은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렸죠. ‘껍데기’가 벗겨지기를 기다려야 했거든요. 예를 들면 핸드폰이 더 이상 핸드폰으로 안 보이는 경지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과 자연은 그 껍데기를 열고 들어가면 본질과 맞닿아 있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소통의 과정을 겪은 후 그 최면 같은 순간에 셔터를 눌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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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사물 03-04>(2003)

 

Q.‘이스라엘 프로젝트’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참여하셨고,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 사진계에서 더욱 주목받으셨는데요. 당시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신다면?

매우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유명 작가들과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고, 함께 전시한다는 것이 영광이었지만 한편으로 스트레스도 심했습니다. 저는 보통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어디에 있으나 정치적인 것, 역사적인 무게감이 저를 짓누르더라고요. 그런데 그 과정이 끝나고 작업이 공개됐을 때 제 작품 <언네임드 로드>가 가장 돋보였어요. <언네임드 로드>에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모습이 녹아있거든요. 이스라엘 작업은 아직 통증이 남아있을 만큼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그 사진에서 오히려 평화를 느꼈다고 말했고, 저를 세계무대에 올려주었죠. 그렇지만 무명일 때나 지금이나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인 것 같아요. 과거의 작품보다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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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 이스라엘시리즈 <UNNAMED ROAD-1>(2011)

이정진, 이스라엘시리즈 &lt;UNNAMED ROAD&gt;(2011)

이정진, 이스라엘시리즈 <UNNAMED ROAD>(2011)

 

Q.작가 이정진에게 작품 활동이란?

‘사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작품을 남기기 위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것이죠. 모든 작품을 그냥 제 삶 속에 포함된 하나의 궤적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죠. 작업이라는 건 ‘가장 의미 있는 깨어있음’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동안 하는 장거리 경주 같은 것이기도 하고요.